[24] 음악을 바꾼 기계들: 모듈러 신디사이저, 음악이 과학이 된 순간
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Vibe입니다.
“소리는 공기다. 하지만 그 공기에 규칙을 부여하는 순간, 우리는 소리를 ‘음악’이라 부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공기 중에서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 때, 물이 바위에 부딪힐 때, 혹은 우리가 목소리를 낼 때. 그 소리들은 대부분 우연의 산물이다. 그런데 어떤 순간부터 인간은 그 소리를 '디자인'하려고 했다. 원래 음악은 사람의 감정, 혼, 순간의 떨림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음악은 그 감정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계가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모듈러 신디사이저라는 장치는 인간이 '공기'를 디자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기를 떨리게 하는 방식마저 수학적인 공식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음악은 어느새 과학의 실험실로 들어갔다. 이 글은 그 흥미로운 과도기, 그리고 지금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온 모듈러 신디사이저의 이야기다.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소리 자체를 재정의한 이 기계를 통해, 우리는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가장 아슬아슬한 경계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1장: 악기가 아니라 실험실 – 모듈러 신디사이저의 탄생
악기는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소리로 풀어내기 위해 만든 도구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처럼 정제된 악기들은 각각 특정한 감성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하지만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처음부터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을 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리 그 자체'를 탐구하기 위한 실험기기였다.
195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특히 RCA와 Moog, Buchla 같은 회사들은 전자공학을 이용해 '기계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물이 바로, 모듈러 신디사이저였다.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 VCO (Voltage Controlled Oscillator): 전압을 통해 주파수를 조절해 다양한 파형을 만든다.
- VCF (Voltage Controlled Filter): 소리에서 특정 주파수를 필터링해 음색을 조정한다.
- VCA (Voltage Controlled Amplifier):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기능
- LFO (Low Frequency Oscillator): 느린 주파수로 다른 모듈에 영향을 주어 반복적 효과를 만든다.
이 장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음악을 구성하는 원자 단위에서부터 조립할 수 있는 실험실이다. 즉흥성이 아니라, 논리와 구조 속에서 예술이 태어난다.
조율이 아니라 조립 – 모듈의 시대가 시작되다
전통적인 악기는 조율을 통해 감정을 정제하지만,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조립을 통해 감정을 창조한다. 사용자는 여러 개의 모듈을 본인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연결해 나간다. 마치 레고를 조립하듯이. 이 방식은 기존의 작곡 방식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은 음계와 화성에 의존한다. 하지만 모듈러 유저는 파형, 주파수, 필터링, 증폭 등 기술적 요소를 조합해 소리를 만든다.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그래서 이런 특성을 가진다: (1) 정해진 답이 없다, (2) 동일한 설정을 하더라도 매번 결과가 다르다, (3) 우연성과 실험성이 필수다, (4) 손으로 직접 만지고, 즉석에서 피드백을 받는다, 결국,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다룬다는 것은 소리와 물리의 세계를 동시에 탐험하는 일이다. 작곡가가 아니라 소리를 조작하는 사람, 일종의 ‘소리의 과학자’가 되는 셈이다.
감성과 수학의 공존 – 음악이 과학이 되는 방식
"음악은 결국 수학적인 질서에 감정을 얹는 작업"이다.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바로 그 질서와 감정의 균형을 극한까지 끌고 간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듣는 ‘웅~’ 하는 저주파 사운드는 단순한 음이 아니다. 그것은 전압이 0에서 5V 사이를 얼마나 빠르게 오르내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건 곧 파형이며, 이 파형이 합성되고 필터링되며 증폭되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색’이 완성된다.
레조넌스 필터는 공명값을 조절해 음에 날카로운 엣지를 준다. 이는 물리학의 공진 현상과 동일하다. 노이즈 모듈은 실제로는 통계학의 정규분포나 균등분포와 관련된다. 패치 케이블은 단순히 연결선이 아니라, 신호의 흐름을 설계하는 회로도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음악은 더 이상 귀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도, 손끝으로도, 심지어 직감으로도 만들어진다. 감성과 수학이 동거하는 세계. 그게 바로 모듈러 신디사이저다.
다시, 인간적인 음악을 찾아서 – 아날로그의 반격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한때 잊힌 기술이었다. 컴퓨터가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아날로그 기계를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디지털 사운드의 정형화된 구조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는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조립하고 연주하는 영상이 급격히 늘어났다. 음악가들은 기성의 소리가 아닌 '내가 만든 소리'를 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한 기계는 다시 음악가들의 작업실로 돌아왔다. 전자음악 아티스트들뿐 아니라, 밴드, 사운드 아티스트, 심지어 ASMR 크리에이터들까지도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활용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묻는다. “가장 인간적인 음악은, 결국 기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소리를 조립하는 사람들, 새로운 음악의 언어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음악을 기술의 언어로 바꾸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사실은, 기술이 오히려 예술을 더 인간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곡의 멜로디나 가사만 듣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곡을 만든 사람의 손끝, 회로, 실수, 패치 순서를 듣는다.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실패할 수 있는 악기이자, 그 실패마저도 음악으로 만드는 도구다. 음악이란 결국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기한 기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문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날로그 회로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