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음악을 바꾼 기계들: 레이지와 로파이 – Z세대가 양손에 쥔 두 개의 감정
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Vibe입니다.
음악이 너무 복잡한 시대, 감정은 양극으로 쪼개졌다
지금 우리는 음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 몇 초면 어떤 감정이든 소리로 표현할 수 있고, 수백만 곡 중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골라낼 수 있는 시대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사람들의 감정은 양극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한쪽은 808이 미친 듯이 터지고, 음정이 찢어질 듯 일그러지는 rage 사운드, 다른 한쪽은 테이프 노이즈 속에 묻힌 피아노 루프가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lo-fi 사운드.
두 장르는 정반대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분노, 하나는 체념. 하지만 이 둘은 사실 동일한 시대정신의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Z세대는 지금, 동시에 rage와 lo-fi를 듣고, 극단의 감정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또 숨깁니다.
Rage – 분노가 멜로디를 찢어발기다
Rage는 단지 ‘화난 음악’이 아닙니다. 이 장르는 사운드 그 자체가 폭발합니다. 하드한 808 베이스가 공간을 짓밟고, 디스토션 걸린 신스가 일그러진 감정을 뒤엎습니다. Playboi Carti, Yeat, Ken Carson 같은 아티스트들은 비트가 아니라 **‘폭발하는 감정 덩어리’**를 만들어냅니다. 가사는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거의 최면적이죠. 이 음악은 ‘생각’을 멈추게 하고 ‘느낌’을 증폭시킵니다. Z세대에게 rage는 말 그대로 감정의 탈출구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빠른 속도, 너무 억눌린 현실 속에서 rage는 감정의 진폭을 의도적으로 키워 세상에 “나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는 음악입니다.
Rage 대표곡 소개: Yeat – “Monëy so big” (2021)
Rage 사운드를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는 바로 Yeat의 “Monëy so big”입니다. 이 곡은 단순히 비트가 강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사운드 그 자체가 감정의 폭발입니다. 디스토션이 걸린 808 베이스는 곡 전체를 진동시킬 정도로 강렬하며, 신디사이저는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왜곡된 멜로디를 반복합니다. 보컬은 오토튠에 과감하게 밀어붙여졌고, 가사는 절제되지 않은 자의식과 혼돈의 흐름을 담고 있죠. 이 곡은 TikTok을 통해 밈처럼 확산되며 Rage 장르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Yeat의 음악은 멜로디가 아닌 에너지의 덩어리로 받아들여지며, Z세대의 정서적 혼란과 쌓인 에너지를 직관적으로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Lo-fi – 무기력함 속에서 조용히 감정을 감추다
반면 lo-fi는 그 정반대입니다. 이 장르는 조용합니다. 한 두 마디의 피아노 루프, 낮은 BPM, 테이프 노이즈와 vinyl crackle로 가득한 배경. 거기엔 드라마도 없고, 절정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작은 감정의 파동이 숨어 있죠. Z세대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고, 잠들고, 감정을 회피하고, 때로는 감정을 되새깁니다. Lo-fi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음악입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종종 가장 큰 공감이 되죠.
Lo-fi 대표곡 소개: Idealism – “Snowfall” (2016)
로파이 힙합을 이야기할 때 jinsang만큼 자주 언급되는 아티스트가 바로 Idealism입니다. 그의 대표곡 “Snowfall”은 lo-fi라는 장르가 왜 ‘감정의 휴식 공간’으로 불리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곡은 단 몇 개의 따뜻한 건반 루프와 약간의 필터가 걸린 킥 드럼, 그리고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들려오는 섬세한 아날로그 노이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혼자 조용히 걷는 듯한 분위기를 만드는 이 트랙은, 복잡한 구성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들게 하죠. “Snowfall”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들을수록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 곡은 lo-fi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정서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합니다.
같은 세대, 다른 선택
흥미로운 점은, rage와 lo-fi를 듣는 주체가 거의 같습니다. 동일한 세대, 동일한 커뮤니티, 심지어 동일한 플레이리스트 안에 rage도, lo-fi도 함께 존재합니다. 낮에는 공부할 때 lo-fi, 밤이 되면 rage로 감정을 터뜨리는 사용자도 많죠. 이건 모순이 아닙니다. Z세대는 그만큼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며, 감정의 진폭이 넓은 세대입니다. 이들은 감정을 하나의 방향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때론 rage로 표현하고, 때론 lo-fi로 눌러놓고, 그 모든 감정조차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죠.
장비와 스타일: 808과 RC-20의 대조
rage 사운드는 대부분 808 베이스의 과도한 디스토션, 하이퍼팝에서 파생된 일그러진 신스, Autotune이 과하게 걸린 보컬 톤으로 구성됩니다. FL Studio, Serum, Gross Beat 같은 에너지 중심 DAW 세팅이 많죠.
반면 lo-fi는 빈티지 피아노 루프, RC-20 Retro Color 같은 플러그인으로 만든 테이프 질감, 느린 드럼 루프가 특징입니다. 프로듀서들은 음악보다는 ‘공간의 분위기’를 설계하는 감각으로 접근합니다.
즉, rage는 직선적인 감정 표현, lo-fi는 은폐된 정서의 재현이 중심입니다.
장비부터 사운드 디자인까지, 이들은 감정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왜 이 두 장르가 공존하는가?
rage와 lo-fi는 양극단에 있지만, 사실 이 둘은 같은 뿌리를 공유합니다. 바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는 세대의 반응”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감정을 밖으로 폭발시키고, 어떤 이들은 조용히 안으로 숨깁니다. 둘 다 건강한 감정 표현이며,
둘 다 이 시대에 필요한 소리입니다. 이 공존은 바로 Z세대가 자신의 감정을 ‘하나의 방식’으로 규정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감정은 흐르기도 하고, 터지기도 하며, 때론 사라졌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음악은 그 감정의 궤적을 따라 함께 흔들릴 뿐입니다.
소리는 달라도, 모두 같은 마음
우리는 종종 음악을 장르로 구분하지만, 사실 음악은 감정의 표출 방식일 뿐입니다. Rage가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면, Lo-fi는 자신을 향해 속삭입니다. 그리고 Z세대는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죠. 분노도, 무기력도, 둘 다 정답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시대가, 이 세대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리듬의 흐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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