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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음악을 바꾼 기계들: Charli XCX와 하이퍼팝의 대중화

Valueinve 2025. 7. 9. 02:48

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Vibe입니다.

오늘은 장르가 되지 않으려던 음악이 어떻게 스포티파이 재생 목록이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장르가 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감정의 언어

하이퍼팝은 원래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단지 누군가의 비명이었고, 다른 누군가의 자의식이었으며, 어떤 날의 감정 덩어리였습니다. 기계처럼 왜곡된 목소리, 터지듯 울리는 808, 말도 안 되게 찢어진 신스 멜로디. 이 음악은 처음엔 실험이었고, 변두리의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낯설고 과잉된 음악이 세계를 휘감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엔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있었습니다. Charli XCX. 그녀는 단지 실험적인 프로듀서들과 작업한 팝스타가 아니라, 하이퍼팝이라는 비명에 얼굴을 부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Spotify는 그 소리를 ‘장르’라는 틀 안에 담아 세계의 재생 목록으로 만들었습니다.

 

 

Charli XCX – 팝의 경계를 부순 팝스타

Charli XCX는 처음부터 메인스트림 스타였습니다. 2014년 히트곡 “Boom Clap”으로 전 세계 팝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아이코닉한 외모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주류 팝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대중적인 팝스타로 안주하지 않고, 2016년경부터 A. G. Cook, SOPHIE 등 PC Music 소속의 실험적 프로듀서들과 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음악은 완전히 바뀝니다. 보컬은 날카롭게 오토튠으로 찢기고, 멜로디는 구조를 무시하고, 사운드는 터지고 왜곡됩니다. 그 변화의 절정은 2017년 믹스테이프 《Pop 2》에서 드러났습니다. 이 앨범은 실험과 감정, 팝과 노이즈가 동시에 충돌하는 작품으로
하이퍼팝의 교과서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Charli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팝을 부순 것이 아니라, 진짜 팝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뿐이다.”

 

 

하이퍼팝은 ‘장르’가 아니었다

처음엔 이 음악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일부는 ‘future pop’, 일부는 ‘bubblegum bass’, 또 어떤 이들은 ‘glitch-pop’이라 불렀지만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었습니다. 하이퍼팝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음악 커뮤니티 내에서 사람들이 이 사운드를 묶어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다 Spotify가 2020년 공식적으로 “hyperpop”이라는 장르 이름으로 플레이리스트를 개설하면서 사람들이 이 음악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 플레이리스트에는 100 gecs, glaive, osquinn, ericdoa 같은 DIY 아티스트부터 Charli XCX, Dorian Electra 같은 아이콘들이 함께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재생 목록은 전 세계 Z세대 청춘들의 ‘디지털 사운드트랙’이 되었습니다.

 

 

Spotify가 만든 ‘가짜 같지만 진짜인’ 장르

흥미로운 점은 하이퍼팝이 자연스럽게 생긴 음악 장르가 아니라, 거의 플랫폼이 의도적으로 조직한 문화적 네트워크라는 것입니다. Spotify는 이 음악을 “새롭고, 이상하고, 중독적이며, 진심 어린 사운드”로 포지셔닝했고, 그 결과 하이퍼팝은 일종의 디지털 정체성 장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운드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 된 것이죠. “나는 하이퍼팝을 듣는다”는 말은 “나는 내 감정을 필터 없이 말하겠다”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다듬어지지 않은, 조악하고 불편한 트랙조차 그 진심의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대중화의 기점 – TikTok, Discord, 그리고 밈

하이퍼팝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아닌 TikTokDiscord 커뮤니티, 그리고 을 통해 퍼졌습니다. 누군가는 비명을 편집한 사운드에 Auto-Tune을 걸었고, 누군가는 귀를 찌르는 신스 루프를 15초 영상에 얹었고, 그걸 또 누군가는 리믹스하고 재편집하면서 하이퍼팝은 하나의 ‘유동적인 소리 언어’로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Charli XCX는 단순한 음악인이 아니라 Z세대 디지털 감성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아티스트이자 편집자이자 커뮤니티의 일부”라고 말했죠. 이 정체성이 바로 하이퍼팝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결국, 장르가 되기를 거부한 음악이 장르가 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퍼팝은 장르가 되지 않으려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장 ‘내 감정 같다’는 공감을 주었습니다. 이는 Charli XCX 같은 인물들이 자신을 스타가 아닌 ‘열려 있는 데이터베이스’처럼 대하면서 가능했던 일이었고, Spotify 같은 플랫폼이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포착하고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준 덕분에 대중화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개의 하이퍼팝 트랙이 TikTok과 Discord에서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건 흐름입니다.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만들어가고 있는 디지털 감정의 파형입니다.

 

 

Charli XCX – “Vroom Vroom” (2016)

이 곡은 Charli XCX가 하이퍼팝의 길로 본격적으로 진입한 대표적인 트랙입니다. 프로듀싱은 SOPHIE가 맡았으며, 금속처럼 찢어지는 베이스, 기계적으로 튠된 보컬,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를 통해 여성성과 속도감을 표현하는 가사가 특징입니다. “Vroom Vroom”은 기존 팝의 틀을 뒤흔드는 동시에, 하이퍼팝의 정체성을 선언한 트랙으로 평가받습니다. 처음 들으면 당황스럽지만, 자꾸 들으면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의 진동이 느껴집니다.

 

 

100 gecs – “money machine” (2019)

하이퍼팝이라는 단어가 처음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무렵, 그 한가운데에는 단연 100 gecs가 있었습니다. 이 듀오의 대표곡 “money machine”은 하이퍼팝의 정체성을 폭발적으로 선언한 트랙입니다. 이 곡은 곧게 뻗은 멜로디 대신 일부러 비뚤어진 톤, 너무 큰 디스토션, 귀를 찌르는 신스 루프, 그리고 말장난처럼 들리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죠. 처음 들으면 이게 음악인가 싶지만, 그 안에는 Z세대의 비틀린 자의식, 농담 같은 진심, 그리고 모든 것을 장난처럼 대하는 생존 전략이 녹아 있습니다. “money machine”은 말 그대로 ‘이상해서 중독되는’ 곡입니다. 100 gecs는 이 곡 하나로 하이퍼팝을 ‘밈’에서 ‘운동’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장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이것을 그냥 ‘나’라고 부른다. 

하이퍼팝은 장르 이전에 세대의 감정 표현 방식입니다. Charli XCX는 그것에 얼굴을 부여했고, Spotify는 그것에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하지만 진짜 하이퍼팝은 그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오늘도 가끔 이렇게 말하겠죠. “이건 너무 가짜 같아.” 하지만 그 말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누구보다 진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