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Vibe입니다.
MIDI는 악기 간 소통을 가능케 한 디지털 음악의 언어입니다. 작곡, 연주, 장르의 경계를 바꾼 이 조용한 혁명이 전자음악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음악은 언제 ‘말을 하기’ 시작했는가?
하나의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다른 악기에게 "같이 해볼래?"라고 건네는 건, 오랜 시간 불가능한 일이었 죠. 한때 음악은 각 악기가 고립된 섬처럼 존재했으며, 전자기기로 만들어진 소리들은 마치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처럼 서로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묻습니다. 음악은 언제부터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1983년,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라는 새로운 언어가 등장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악기와 악기 사이, 아티스트와 기술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음악 사이를 연결하는 디지털 시대의 공용어였습니다. MIDI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혁명은 우리가 아는 모든 전자음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언어를 쓰던 악기들
디지털 악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각 브랜드는 자신만의 기술로 작동했습니다. 야마하의 신디사이저와 롤랜드의 드럼머신은 서로 전혀 대화를 할 수 없었죠. 연동은커녕, 박자조차 맞출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건 마치 영어로 말하는 기타와 일본어로 반응하는 드럼이 무대 위에서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 같았죠. 음악이 디지털화되면서 오히려 고립이 심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981년, 롤랜드의 이케타니 키쿠히로와 미국의 신디사이저 제작자 데이브 스미스가 "모든 악기를 연결하는 표준 언어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MIDI였습니다.
MIDI는 ‘소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MIDI가 소리를 전송한다고요? 아닙니다. MIDI는 ‘음의 지시서’입니다. 마치 무대 감독이 “조명 켜!”, “배우 등장!”이라고 지시하듯, MIDI는 악기에게 “C코드를 쳐라”, “지금 볼륨을 줄여라”라고 말합니다. 즉, MIDI는 악보이자 명령어인 셈입니다. 실제 음파가 아닌, 음의 트리거 신호만 전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작고, 빠르고, 유연하며, 거의 무한히 편집이 가능하죠.
덕분에 하나의 건반으로 수십 개의 악기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 연주한 음을 다시 녹음하지 않고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작곡의 문이 열리다
MIDI의 등장은 작곡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꿨습니다. 이전까지 작곡은 펜과 오선지 위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마우스와 키보드, 그리고 시퀀서에서 이루어졌죠. 컴퓨터 속 피아노 롤(Piano Roll)에서 음표를 찍고, 템포를 조절하고, 소리를 바꾸고, 여러 악기를 하나의 트랙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재녹음'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이었죠. 실패한 연주도 한 음만 수정하면 되고, 모든 데이터는 0과 1로 저장되어 언제든 불러올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효율성 덕분에 1980~90년대 수많은 뮤지션들이 작곡과 편곡, 믹싱을 하나의 랩탑 안에서 완성하기 시작했습니다.
MIDI가 만든 장르들
MIDI는 단순히 음악의 툴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새로운 장르를 낳는 기반 인프라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장르들이 MIDI 없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시퀀서 기반 테크노와 하우스: 롤랜드 TR-909, 808, 그리고 TB-303 같은 악기들이 MIDI와 연동되어 비트를 설계했습니다. 신스팝과 뉴웨이브: Depeche Mode, New Order, Pet Shop Boys는 MIDI를 적극 활용해 신디사이저 기반 사운드를 구축했습니다. 게임 음악과 BGM: 1990년대 게임 콘솔의 BGM은 대부분 MIDI 기반으로 작곡되었습니다. EDM과 트랩, 일렉트로닉 실험 음악: 컴퓨터 기반 음악은 대부분 MIDI 시퀀싱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Gershon Kingsley의 'Popcorn'이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시대를 열었다면, MIDI는 그 음악을 정밀하게 조립할 수 있는 도면이었던 셈입니다.
MIDI가 만든 인간적인 ‘불완전성’
흥미로운 건, MIDI는 완벽한 기술처럼 보이지만 그 ‘기계적인 정밀함’이 때론 인간적인 결핍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초기 MIDI 음악은 너무 정확했습니다. 모든 음이 일정했고, 박자는 기계처럼 완벽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표현력'의 부재를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일부 뮤지션들은 일부러 박자를 살짝 밀고, 벡터 에디팅으로 미세한 흔들림을 삽입하거나, ‘휴먼라이즈’ 기능을 통해 기계적 리듬에 인간성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MIDI는 단지 기계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성을 흉내 내는 기술로 진화했습니다. 그건 오히려 음악이 더 인간답게 들리도록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MIDI 2.0 – 표현의 확장
2020년, MIDI 2.0이 발표되었습니다. 기존의 MIDI가 지시만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표현의 질’을 담아낼 수 있도록 설계된 차세대 프로토콜입니다. 벨로시티의 정밀도 향상, 연주자의 터치 감도 반영, 양방향 통신, 고해상도 제어 (32bit) 등 MIDI 2.0은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속도, 떨림, 압력까지 감지합니다. 이제 악기는 서로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연주는 더 섬세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MIDI는 음악을 바꾼 기술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음악을 연결한 언어였습니다. 혼자 울리던 악기들을 함께 연주하게 만들었고, 작곡가를 연주자로, 연주자를 프로듀서로 변화시킨 기술이었죠. MIDI는 소리를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소리를 서로에게 건네줄 수 있는 방법을 만든 기술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신호선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듣는 수많은 음악의 ‘등줄기’가 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는 여전히, 그 조용한 혁명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