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Vibe입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음악이, 사실은 150년 전의 ‘기계적 충격’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요? 음악을 듣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최근에서야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과 19세기까지만 해도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이었거든요. 누군가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켜줘야만 음악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소리를 기계에 새겨 넣고 그것을 다시 재생해버립니다. 이 한 번의 발명으로 인류는 음악을 ‘경험’이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동시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빠질 수 있는 것도, 무드에 따라 유튜브 알고리즘이 음악을 골라주는 것도, 그 모든 시작은 바로 ‘축음기’였습니다.
음악을 ‘들어야 했던’ 시절
지금은 음악이 넘쳐나는 시대죠. 집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음악을 듣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음악은 오직 ‘현장에서만’ 존재하는 예술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회화나 문학을 박물관이나 서점에서 '보는 것처럼' 듣는 음악도 그 당시엔 '그 장소에 가서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음악을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철학, 수학, 윤리의 영역으로 다뤘습니다. 음악은 삶을 정화시키는 도구이자 신과 소통하는 매개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렇게 숭고했던 음악이 철저히 ‘한 번 지나가면 끝나는 예술’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연주해도, 그건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소리의 마법’이었습니다.
먼저 상상해봅시다.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고, 스포티파이도 없던 시절입니다. 음악을 듣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내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내 옆에서 직접 연주해줘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이라는 건 늘 ‘실시간 생방송’이었죠.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들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음악은 늘 희귀했고, 귀했으며, 그 자체로 권력이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귀족 계층이거나, 혹은 운이 좋아야 했거든요.
소리를 '붙잡다' - 축음기의 탄생
1877년,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사람의 목소리를 기록해서 다시 들을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현실로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축음기(Phonograph)’입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이 기계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마법처럼 보였어요.
토머스 에디슨이 소리를 ‘붙잡았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닙니다. 에디슨은 원래 전화기를 더 잘 녹음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고 있었는데, 실수처럼 나온 결과물이 바로 축음기였습니다. 실린더에 바늘을 대고, 진동을 새겨 넣는 구조였죠. 에디슨이 직접 만든 기계 앞에 서서 "메리 had a little lamb..."이라고 말하자, 몇 초 후 그 기계가 그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 번 울리면 사라지는 것이었는데, 에디슨은 그걸 잡아서 되돌려줬던 거죠. 축음기는 단순한 오디오 기기가 아니라, 인간이 ‘시간’과 ‘감정’을 보관할 수 있게 만든 마법의 도구였습니다.
이제 음악은 한 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음악을 붙잡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축음기, 음악을 ‘소유하는’ 시대를 열다 - 음악산업의 혁명
축음기의 등장은 예술의 성격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 음악은 ‘그때 그 자리’에 있어야만 누릴 수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음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건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닙니다. 문화적 대전환이었어요. 문학이 인쇄술을 만나며 ‘책’이라는 형태로 대중화된 것처럼, 음악도 축음기를 만나며 ‘소유 가능한 오브제’가 된 겁니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이제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꼭 연주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됐어요. 음악을 ‘기계’ 안에 저장해두고, 언제든지 꺼내서 들을 수 있게 된 거죠. 여기서부터 음악은 더 이상 ‘시간 속 예술’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똑같은 음악을 수백 번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었죠. 음악은 이제 ‘소장 가능한 물건’이 되었고, 거기서부터 음반 산업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재현’이라는 개념이 ‘복제’로 바뀌는 순간, 음악은 처음으로 대중의 손에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음악을 ‘소비’하게 되었다는 뜻이거든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음반 회사가 녹음해서, 사람들이 돈 주고 그걸 사서 집에서 듣는 구조, 음악이 산업이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구조가, 바로 축음기에서 출발한 겁니다.
세계를 뒤흔든 ‘사운드의 민주화’ - 대중음악의 시대 도래
축음기가 확산되자,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이거... 음악을 팔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음반 산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클래식 음악이나 유명 오페라 연주를 녹음한 실린더 음반이 판매되었고, 이후엔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유명한 목소리’ 자체가 상품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재즈가 등장하고,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랙타임이 퍼지면서 ‘녹음된 음악’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트렌드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수가 등장하고, 스타가 생기고, 음반이 차트를 만들고, 라디오가 이 음반들을 방송하면서 음악은 이제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그 시작에는 언제나 축음기가 있었죠.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음악의 민주화’였습니다. 이전까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건 상류층의 특권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평범한 가정집 거실에서도 베토벤이 울려 퍼질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지역과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 음악이 퍼져나갔다는 겁니다. 미국 남부의 흑인 블루스 음악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유럽 클래식이 아시아로 퍼졌어요. 축음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문화의 전파자’였던 셈입니다.
지금 우리가 카페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건, 바로 이 축음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음악은 유튜브나 멜론, 스포티파이에서 나올 겁니다. 하지만 그 모든 플랫폼도 결국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음악을 기록하고 다시 들을 수 있다.” 카세트테이프, CD, MP3,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운드 기술은 축음기의 개념을 확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축음기는 음악 기술의 ‘원형(原型)’이자, 모든 디지털 사운드의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축음기의 유산 - 아날로그의 감성과 인간의 흔적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지금도 LP 레코드, 턴테이블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죠. 사람들이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다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복고 감성 때문이 아닙니다. 축음기가 주는 사운드는 조금 거칠고,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거든요. 기계가 아닌 인간이 만든 음악, 그 흔적이 담겨 있다는 거죠. 이런 감성은, 지금의 인공지능 음악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축음기가 열었던 그 첫 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무리하며
축음기는 단순한 발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음악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관점을 바꾼 사건이었고, 음반산업을 탄생시켰으며, 무형의 예술을 ‘형태 있는 소비재’로 바꾼 첫 번째 기계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까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소리를 붙잡아보자”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그 한 번의 상상이, 우리의 음악 인생 전체를 바꿔놓았다는 것. 그게 바로 축음기가 세상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