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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음악을 바꾼 기계들: 축음기가 음악에 미친 영향 - 기록된 소리가 장르를 낳다

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Vibe입니다.

 

음악 장르의 등장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직접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음악 장르의 발전을 ‘문화적 흐름’이나 ‘예술가들의 창의성’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음악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즉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로 인하여 인류는 처음으로 '소리'를 저장하게 되었다.

 

이 작은 기계는 단지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음악 장르들을 탄생시키고, 퍼뜨리고, 산업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블루스, 재즈, 컨트리, 가스펠, 탱고 같은 음악들은 어쩌면 축음기가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축음기 이전 – 소리의 운명은 사라짐이었다

축음기 이전의 음악은 오직 한 번만 존재했다. 연주자는 공연을 마치면 그 곡을 ‘다시 재현’할 수 있었지만, 그 순간의 감정, 템포, 리듬, 호흡은 다시는 같을 수 없었다. 청중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유명한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 시기에 발전한 음악은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 종교음악 등 귀족층과 교회 중심의 제한된 문화권 내에서만 순환되었다. 음악은 문자처럼 기록될 수 없었고, 따라서 지역성과 계층성에 갇힌 예술이었다.

 

블루스 – 구전되던 한(恨)이 기록되다

블루스는 축음기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자들이 부르던 필드 송(field song)과 노동요는 노트도, 악보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다. 그들의 음악은 기록되지 못하는 것이었고, 주류 사회에서는 ‘하류 문화’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축음기가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1920년대 미국의 음반사들은 ‘새로운 사운드’를 찾기 위해 남부 흑인 지역을 탐험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마 레이니(Ma Rainey),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같은 블루스의 전설들이다. 블루스는 축음기를 통해 지역 민속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승격되었고, 이후 록앤롤, R&B, 힙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의 원형이 되었다.

 

재즈 – 즉흥성을 기록하다

재즈는 ‘지금 이 순간’의 음악이다. 즉흥 연주를 핵심으로 하는 장르이기에, 원래는 ‘한 번 지나면 끝’인 음악이었다. 하지만 축음기는 그 즉흥성을 고스란히 잡아냈고, 오히려 ‘이 곡의 버전이 너무 좋아!’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솔로,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빅밴드 연주는 녹음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축음기는 재즈를 ‘기록할 수 있는 예술’로 바꾸었고, 그 음반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예술 패러다임의 시작이기도 했다. ‘즉흥’을 반복해서 듣는다는 아이러니한 감상이 바로 축음기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힐빌리 컨트리 – 축음기가 만든 미국의 소리

1920년대 미국 음반사들은 또 다른 ‘사운드’를 찾아 이번에는 산골로 향했다. 애팔래치아 산맥과 남부 농촌에서 연주되던 백인 민속음악, 즉 ‘힐빌리(Hillbilly)’ 음악이 그 대상이었다. 이 음악은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에게 ‘향수와 정서’를 제공했고, 결국 음반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그 중심에는 카터 패밀리(The Carter Family)와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가 있었다.

 

축음기는 이 음악을 도시로 끌어올렸고, 훗날 ‘컨트리(Country)’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장르로 발전시킨다.

 

가스펠 – 교회에서 라디오로, 라디오에서 음반으로

가스펠은 원래 흑인 교회에서 부르던 종교 찬송가였다. 목사와 성가대가 부르는 이 곡들은 공연이 아닌 예배의 일부였고, 따라서 외부에서는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축음기와 함께 가스펠은 단순한 종교음악을 넘어, 영적 감동을 담은 대중음악으로 진화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축음기를 통해 미국 전역에 퍼졌고, 가스펠은 그 자체로 ‘스타’를 만드는 장르가 되었다.

 

탱고 – 지역 춤 음악의 글로벌화

탱고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댄스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탱고는 퇴폐적이고 저급한 음악으로 간주되었으나, 축음기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며 전혀 다른 인식을 얻게 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탱고 음반이 인기를 끌면서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고, 단순한 지역 음악이 아닌 ‘브랜드 음악’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세계화의 초기 사례이자, 축음기가 만든 ‘음악의 국경 해체’의 시작이었다.

 

민속 음악 – 사라질 뻔한 소리를 기록하다

축음기가 한 일 중 가장 의미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사라질 뻔한 전통 음악의 보존이다. 한국의 판소리, 일본의 민요, 중국의 경극 음악 등 다양한 전통음악은 축음기에 의해 사라지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다. 이 모든 음악은 누군가 축음기에 녹음해두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에디슨 축음기 초창기엔 민속음악 채집가들이 축음기를 들고 각국의 전통 음악을 녹음했고, 이는 민족학과 음악학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축음기는 장르의 어머니였다

축음기는 단순히 소리를 기록하는 기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장르를 창조한 도구 였다. 앞서 살펴본 여러 장르들은, 축음기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음악들이다. 축음기은 존재하지 않았던 장르를 태어나게 했고, 지역에 갇혀 있던 소리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으며, 기록되지 못했던 감정과 역사, 정서를 음반이라는 형태로 보존하게 했다. 지금 우리가 듣는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뿌리는 축음기가 만들어 낸 소리의 유산이다. 축음기는 음악 산업의 시작이었을 뿐 아니라, 음악 장르 탄생의 산파(産婆)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