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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펠라 쿠티(Fela Kuti): 리듬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혁명가

 

 

 

 

펠라 쿠티(Fela Kuti)는 나이지리아의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 밴드 리더, 그리고 반체제 투사였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사운드를 넘어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무기였고, 그의 무대는 공연장이 아니라 투쟁의 전선이었다. 펠라는 ‘Afrobeat’라는 장르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권력에 맞서고, 부패를 고발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가 남긴 곡 하나하나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음악가와 정치운동가에게 영감을 준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 음악, 철학, 그리고 유산에 대해 깊이 들여다본다.

 

 

어린 시절과 음악적 배경

펠라 아니콜라포 쿠티(Fela Anikulapo Kuti)는 1938년, 나이지리아 남부의 아베오쿠타(Abeokuta)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교육과 정치에 깊이 관여한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성공회 목사이자 교육자였고, 어머니 펀밀라요 란솜 쿠티(Funmilayo Ransome-Kuti)는 나이지리아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반식민주의 운동가였다. 이런 배경에서 자란 펠라는 어릴 때부터 지적 자극과 사회적 의식을 함께 배우며 성장했다. 그는 1958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트리니티 음악학교(Trinity College of Music)에서 클래식을 공부했고, 색소폰과 트럼펫을 연주하며 음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건 미국 체류 경험이었다.

 

 

 

 

미국에서 깨달은 ‘흑인의식’과 음악의 힘

1969년, 펠라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미국 투어를 떠난다. 이 시기 그는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팬서 운동의 분위기를 현장에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에게 단순히 음악가가 아닌, 음악으로 세상과 싸우는 전사로서의 자각을 일깨워준다. 그는 이 시기, 음악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후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펠라는 자신만의 음악 장르인 Afrobeat를 만들고, 이를 통해 본격적인 사회비판과 정치저항을 시작한다.

 

 

Afrobeat의 창시자, 그리고 철학자

Afrobeat는 펠라 쿠티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음악이다. 전통적인 아프리카 타악기 리듬 위에, 재즈의 즉흥성, 펑크의 에너지,
그리고 사이키델릭 락의 실험성이 얹혀진 형태다. 그러나 Afrobeat의 진짜 핵심은 가사였다. 그는 노래 속에서 부정부패, 독재, 제국주의, 인권 억압을 가감 없이 비판했다. 펠라의 가사는 영어가 아닌 피진 잉글리시(Pidgin English)로 작성되었는데, 이는 나이지리아 전역의 민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의 대표곡 ‘Zombie’는 군인을 생각 없는 좀비에 비유하며, 군부를 정면으로 조롱했고, ‘Water No Get Enemy’, ‘Sorrow Tears and Blood’ 등은 민중의 고통과 희망을 노래했다.

 

 

 

 

 

칼락루타 공화국과 정부 탄압

펠라는 음악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하나의 저항 행위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만의 자치 공간인 칼락루타 공화국(Kalakuta Republic)을 설립했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 레코딩 스튜디오, 병원, 예술 공간이 모두 결합된 실험적 사회였다. 그러나 이곳은 곧 정부의 표적이 된다. 1977년, ‘Zombie’ 발표 직후 나이지리아 군대는 칼락루타를 습격했고, 건물은 불태워졌으며, 펠라의 어머니는 창문에서 던져져 중상을 입고 결국 사망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줬고, 펠라는 그 뒤에도 수차례 체포, 고문, 감옥 생활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을 통해 더욱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펠라 쿠티의 유산과 영향

펠라 쿠티는 1997년 에이즈 관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리듬은 죽지 않았다. 그의 아들들인 펨미 쿠티(Femi Kuti)숀 쿠티(Seun Kuti)는 아버지의 음악과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숀은 아버지의 밴드였던 Egypt 80을 이끌며 Afrobeat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세계적인 아티스트들 - Beyoncé, Kendrick Lamar, Janelle Monáe, Burna Boy 등 - 수많은 뮤지션이 펠라 쿠티를 자신들의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하고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그의 삶을 다룬 뮤지컬 <FELA!>가 상연되었고, 유네스코는 그를 ‘세계 인권 음악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꼽았다.

 

 

 

 

그가 남긴 질문

펠라 쿠티는 단순히 음악을 잘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었던 사람이다. 그의 무대는 쇼가 아니라 진실의 공간이었고, 그의 노래는 위로가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는 외침이었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가는 침묵할 수 없다. 세상이 불공평할 때, 음악은 반드시 말해야 한다.”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리듬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펠라 쿠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어디선가 드럼과 색소폰을 통해 세상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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